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성동교회
21
21
홈> 오늘의 말씀
  • 5월 3일 설교 요약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 (요 2:1-11)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기쁨’을 주는 분이십니다. 성경에서 포도주는 ‘기쁨’을 상징합니다.(삿9:13, 시104:15, 전10:19)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 포도주를 만드셨으며, 연회장은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한 채 좋은 포도주라며 극찬합니다.(요2:9-10) 예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알지 못하며, 세상의 것과 비길 수 없는 ‘참 기쁨’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우리의 ‘진정한 거룩함’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정결 예식을 위한 돌항아리’를 이용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정결 예식을 위한 돌항아리가 비어있었다는 것은 예수님 없는 정결 의식은 형식적인 껍데기에 불과함을 의미합니다. 율법을 완전케 하시는(마5:17) 예수님께서는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시고, 그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진정한 거룩함’을 이루시는 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이루는 분이십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다’고 요청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포도주를 제공하여 구원자임을 나타내라’는 마리아의 의도를 거절하신 말씀입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서는 그제서야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2:23-24) 자신의 구원자임을 드러냄으로 영광을 받을 때는 오직 ‘십자가 죽음’의 때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기적의 산물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을 통해 참 기쁨과 거룩함,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1주 전by 김대선
  • 4월 26일 설교 요약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라 (마 5:10)   예수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천국을 소유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의는 세상의 기준으로 세워진 의가 아닌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를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합니다.(창15: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란 ‘하나님을 믿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2:44) 그러므로 ‘의’란 ‘예수님을 믿는 것’이며, ‘의를 위해 박해를 당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박해를 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악하고, 우리의 믿음은 세상의 악함을 드러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세상에서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박해는 헬라어로 δεδιωγμένοι(데디오그메노이)인데 이 단어는 ‘쫓겨나다’, ‘밀려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박해란 세상에서 쫓겨나고 밀려나서 ‘자리를 잃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의 의미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복음을 전하려 할 때, 세상은 우리의 안정을 무너뜨리고, 불이익을 주며 박해할 것입니다. 그들의 악함이 드러나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박해를 받는 자에게 ‘천국을 소유하는 복’이 있음을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자리를 잃어도, 하나님 나라의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팔복의 마지막 약속을 기억하며 ‘의를 위해 박해를 받은 자’가 되어 천국을 소유하고 누리시는 복된 삶을 삽시다.
    1주 전by 김대선
  • 4월 19일 설교 요약

    화평하게 하는 자의 참된 화평 (마 5:9)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마음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제거하고 화평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상 숭배는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모세에 의해 3000명이 죽임당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는 화평은 진정한 화평이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참된 화평은 사람 사이에서 이루는 화평이 아닌 하나님과의 화평입니다. 그리고 이 화평은 진정한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다’고 말씀합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을 우리의 화목제물로 삼아,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룬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는다는 것입니다.(고후5:17-18)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었다면, 이제는 복음을 전함으로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며 세상에 화평을 이루는 일을 ‘아름답게’ 보십니다.(사52:7)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는 구원을 누리며, 복음을 전함으로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을 누리시를 축복합니다.
    3주 전by 김대선
  • 4월 12일 설교 요약

    마음이 청결한 자가 누리는 하나님을 보는 복 (마 5:8)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레11:45)라는 말씀으로 ‘청결’을 명령하셨습니다. 이러한 청결은 단순히 몸을 깨끗이 씻는 ‘몸의 청결’이 아닌 ‘마음의 청결’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본질적으로 마음이 악하고, 또 그 정도가 심하여 하나님의 말씀처럼 스스로 깨끗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저런 명령을 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마음의 청결을 명령하신 이유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은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양심(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삶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 거룩한 삶까지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됨으로 ‘하나님을 보는 복’까지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누리며,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입니다(시24:3-6).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아 누리는 모든 복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공회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며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렸습니다. 이때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스데반을 기뻐하시며 보좌에서 일어나신 모습까지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림으로 예수님의 기쁨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된 우리 또한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며 예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됩시다.
    4주 전by 김대선
  • 4월 5일 설교 요약

    부활의 첫 열매 예수님 (고전 15:20)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는 삼 일째 되는 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은 기절설, 도적설, 환상설, 유령설 등으로 부활이 거짓이라 주장하지만, 빈 무덤과 허다한 증인들, 그리고 그 증인들의 목숨을 건 순교를 통해 우리는 부활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라고 증거합니다. 여기서 ‘첫 열매’라는 표현은 구약의 절기인 ‘초실절’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첫 수확한 곡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초실절’을 지켰는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바로 ‘초실절’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초실절’ 후 일곱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을 ‘칠칠절’로 지키게 하셨는데, 여기서 ‘일곱 안식일이 지나는 기간’이란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한이 가득 차는 때’ 즉 ‘재림의 때’를 의미하며, ‘칠칠절’에 다시 한번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다는 것은 초실절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듯이 재림의 때에 성도들이 부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틀러의 나찌에 저항하며 신앙을 지키기 위해 힘쓴 본 회퍼 목사는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며 “이로써 끝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삶의 시작입니다.”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뿐 아니라 성도의 부활까지 확신하는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닌 영원한 삶의 시작임을 기억하며 담대하게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1개월 전by 김대선
  • 3월 29일 설교 요약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막 11:15-18)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너희가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착취’입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은 성전에서는 유대의 화폐인 ‘세겔’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이용해 높은 수수료로 폭리를 취했습니다. 또한 대제사장과 결탁하여, 성전에서 구매한 짐승이 아니면 제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백성을 착취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차별’입니다. 구약시대 성전은 이방인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장소였으나, 신약시대에는 ‘이방인의 뜰’로 제한되었습니다. 성전 증축으로 ‘바깥뜰’이 생기자, 유대인들이 ‘바깥뜰’을 ‘이방인의 뜰’로 정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막은 것입니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성전 출입구에 “성소 주변 뜰에 들어오는 이방인은 죽음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글귀가 적힌 비문까지 세워 심한 차별을 가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라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는 착취와 차별의 막힌 담을 허물고 ‘만민’을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은혜와 사랑의 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앞두신 고난주간에 성전 청결을 행하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무너뜨려야 할 ‘막힌 담’을 보여주셨습니다. 종려주일을 맞아, 성전 된 우리 몸 안에 남아 있는 모든 ‘막힌 담’을 허물고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1개월 전by 김대선
  • 3월 22일 설교 요약

    긍휼히 여기는 자가 받는 긍휼히 여김의 복 (마 5:7)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의 복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긍휼’은 히브리어로 헤세드(חֶסֶד), 헬라어로 엘레오스(ἔλεος)이며, 이 단어들은 ‘은혜’와 ‘자비’를 의미합니다. 은혜와 자비가 궁극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은 바로 ‘용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 ‘긍휼’이란 바로 ‘용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장에서 ‘만 달란트 빚진 종의 비유’를 통해 용서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만 달란트’와 같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받으려면,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지은 죄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가 남을 용서하면,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죄 용서를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를 보시고 죄 용서를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받으려면,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지은 죄를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용서 여부를 두고 보시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만이 그것을 누리며 ‘참 용서’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심으로(히9:12) 우리의 죄를 완전히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자들은 단순히 남의 죄를 용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 그들의 죄 사함을 구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간구가 바로 ‘참 용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 용서’는 우리가 받은 구원을 누리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참 용서’를 행하며, 구원을 누리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1개월 전by 김대선

성동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성동교회입니다. 교단 :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노회 : 경기노회

주소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북구 4.19로13길 10

전화 010-3552-9398

Copyright © 성동교회 All rights reserved. provided by스마트처치

본 사이트에서 사용된 일부 리소스는 오픈소스 라이선스를 따릅니다. 자세한 내용은 라이선스 안내를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