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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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23일 설교 요약

    2주 전by 김대선
  • 8월 16일 설교 요약

    2주 전by 김대선
  • 8월 9일 설교 요약

    2주 전by 김대선
  • 8월 2일 설교 요약

      하나님께 상받는 구제(마 6:1-4) 1. 올바른 구제란 ‘예수님’을 주는 것 누가복음 11장 4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형식적으로 율법을 지키던 바리새인에게 하신 말씀으로, ‘형식적인 율법’을 주는 구제가 아닌 ‘율법 안에 있는 율법의 참 의미’를 주는 구제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며, 모든 성경의 내용이 예수님에 관한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마5:17, 눅24:27, 요5:39, 갈3:24) 따라서 ‘율법 안에 있는 율법의 참 의미’는 바로 ‘예수님’이며, 올바른 구제란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2. 은밀한 비밀 ‘복음’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0장 21절에서 ‘복음은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겨져 있다’고 말씀하셨고, 8장 10절에서는 복음을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라고 지칭하셨습니다. 즉 복음은 ‘은밀한 비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하라고 말씀하셨고, 3절에서는 ‘은밀하게 구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복음 자체가 ‘은밀한 비밀’이므로, 예수님의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하게’ 구제하라는 말씀은 ‘복음’을 주는 구제를 하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올바른 구제를 하는 자가 누리는 하나님의 상 ‘평안’ 마태복음 6장 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의’를 행하는 자가 하나님의 상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셨고, 4절에서는 올바른 구제를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갚으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상은 세상이 줄 수 없고,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상으로 ‘평안’을 의미합니다.(요14:27)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마음이 불안하면 삶을 망치듯 평안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은혜입니다. 복음을 주는 올바른 구제를 통해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성도들이 됩시다.
    1개월 전by 김대선
  • 7월 26일 설교 요약

    성화, 견인, 영화(살전 5:23) 1. 성화 성화란 우리의 삶이 죄를 떠나 거룩하게 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고후7:1) 성경은 성화를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제시하면서도, 우리의 능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닌 성령님께서 이루시는 사역임을 증거합니다.(살후2:13) 그러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 거룩한 삶을 살되, 우리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를 이룰 수 있음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견인 견인이란 ‘단단하게 참는다’라는 의미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을 이겨내고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성화와 마찬가지로 견인 역시 구원의 필수 조건이며(마24:13, 히10:36)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빌1:6)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필연적으로 많은 환난과 핍박을 겪게 되는데 ‘견인’ 교리는 우리로 하여금 환난과 핍박을 이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 수 있는 힘을 줍니다. 3. 영화 영화는 구원 서정의 마지막 단계로 우리의 모든 구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 가운데 거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영화는 두 번에 걸쳐서 일어나는데, 먼저 이 세상에서 죽었을 때 ‘영혼의 영화’가 일어나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몸의 영화’까지 완전하게 일어납니다. 성경은 재림 때 임할 하나님 나라를 현재 우리가 당할 고난과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곳이며 사망, 슬픔, 아픔 등이 없는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영화의 상태를 기대하며, 소망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1개월 전by 김대선
  • 7월 19일 설교 요약

    칭의, 양자(갈 3:24-26) 소명과 중생을 통해 믿고 회개한 자는 하나님께 칭의와 양자의 은혜를 받습니다. 1. 칭의 칭의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여겨주시는 은혜입니다. 여기서 의인으로 여겨주신다는 것은 우리가 진짜로 죄 없는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인으로 여겨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의 ‘대속물’로 삼으셔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를 죄로 인한 모든 형벌과 책임으로부터 해방하셨습니다.(마20:28)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의인’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칭의를 받음으로 여러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최후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마13:43), 정죄 당하지 않으며(롬8:33),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격을 얻습니다.(히9:14) 2. 양자 양자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여기실 뿐 아니라 자녀까지 삼아주시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인데, 우리는 양자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빌1:4-5)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가 됨으로 인해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녀의 삶을 살게 되었으며(롬8:15),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성령님을 따라 사는 능력을 공급받게 되었고(눅11:13), 때때로 우리가 엇나갈 때마다 필요한 징계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12:7) 우리는 이러한 완전한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개월 전by 김대선
  • 7월 12일 설교 요약

    믿음, 회개(막 1:15) 성령님을 통해 ‘소명’, ‘중생’이 이루어진 자는 그 반응으로 ‘믿음’, ‘회개’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1. 믿음 믿음이란 올바른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믿는 행위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죽음에서 부활하신 우리의 구원자로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롬10:9) 믿음에는 반드시 ‘지식’, ‘동의’, ‘신뢰’라는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식’이란 예수님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며, ‘동의’란 습득한 지식을 진리로 인정하는 것이며, ‘신뢰’란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 ‘동의’, ‘신뢰’의 믿음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회개 회개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죄를 후회하며 죄에서 돌이키는 모습을 의미합니다.(욥42:6, 행3:19) 즉 ‘죄를 향하던 삶의 방향’을 ‘하나님을 향하는 삶의 방향’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회개는 ‘단회적 회개’와 ‘반복적 회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단회적 회개’란 ‘구원받는 회개’로 위에서 살펴본 ‘삶의 방향을 죄에서 하나님으로 돌이키는 회개’입니다. 이러한 회개는 완료된 회개이며, 다시 반복하지 않습니다. ‘반복적 회개’는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하는 회개로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기 위한 회개입니다.(벧전2:11) 이러한 ‘반복적 회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구원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개월 전by 김대선
  • 7월 5일 설교 요약

    맥추절의 진정한 의미(행 2:1-4) 맥추감사주일은 성경의 맥추절에서 유래한 한국교회의 절기로 ‘맥추절의 의미’를 기억하며 기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맥추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 우리를 먹이시고 지키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밀을 추수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 날입니다.(출34:22) 한국교회는 이러한 맥추절의 정신을 계승하여 보리추수가 마무리되는 7월 첫째 주를 ‘맥추감사주일’로 정해 지켜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직접 곡식을 추수하지 않지만 한 해의 반이 마무리되는 우리를 먹이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맥추감사주일을 기념해야 합니다. 2.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받은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맥추절을 ‘나탄 토라’(מַתַּן תּוֹרָה)라고 부릅니다. ‘나탄’은 ‘주다’, ‘토라’는 ‘율법’이라는 뜻으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은 날이 바로 맥추절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는 곡식을 추수함으로 감사를 드리는 절기인 맥추절에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보살핌만을 받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자들임을 의미합니다.(출19:5) 그러므로 우리는 맥추감사주일을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다짐하며 기념해야 합니다. 3.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입니다. 맥추절의 또 다른 이름은 ‘오순절’로 이날은 신약시대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입니다.(행2:1,4) 이날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복음을 전했고, 베드로의 설교로 삼천 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행2:41) 그리고 이러한 장면은 과거 모세가 율법 돌판을 가지고 내려올 때 금송아지를 섬긴 이스라엘 백성 삼천 명이 죽임을 당한 사건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는 율법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맥추감사주일을 기념해야 합니다.
    2개월 전by 김대선
  • 6월 28일 설교 요약

    소명, 중생(요 3:3-7) 소명, 중생은 구원 서정 중 첫 번째, 두 번째 서정입니다. 1. 소명 소명이란 하나님께서 죄인을 부르시는 과정입니다. 소명은 구원 서정의 가장 앞에 위치함으로써 구원이 인간의 행위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됨을 보여줍니다. 소명의 종류에는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이 있습니다. 외적 소명은 성경이나 전도를 통해 복음을 듣는 소명으로, 죄인은 전적으로 무능하여 외적 소명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내적 소명은 성령님께서 죄인을 영적으로 부르시는 소명으로, 구원은 내적 소명으로만 이루어집니다.(고전2:4, 살전1:5) 또한 중요한 점은 내적 소명은 반드시 외적 소명을 수단으로 삼아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적 소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최선을 다해 외적 소명인 전도의 사명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중생 중생이란 ‘거듭나다’라는 의미이며 우리의 몸이 아닌 영이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듭나야 함을 말씀하시며(요3:3), 성령님을 통해 중생이 이루어짐을 가르치셨습니다.(요3:5) 그런데 중생한다고 해서 우리가 바로 죄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영은 거듭난 새 영이 되었지만 아직 육체의 정욕이 남아 죄를 짓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우리의 영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법을 섬기게 하는 마음을 주어 우리의 삶의 방향을 죄에서 멀어지게 합니다.(롬6:2) 그러므로 우리는 중생을 통해 완전히 죄인된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음을 기억하며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롬7:25)
    2개월 전by 김대선
  • 6월 21일 설교 요약

    연합 (요 14:16-17) 구원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우리는 구원에 대해 정확히 알고 구원의 기쁨을 풍성하게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구원에는 객관적 구원과 주관적 구원이 있습니다. 구원은 객관적 구원과 주관적 구원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 구원이란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로 이루신 구원이고 주관적 구원이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구원입니다. 이 두 구원은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 서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2.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 중 ‘영으로 계신 하나님’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이신 분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께서는(요14:6)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표현하심으로(요14:17, 15:26)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영임을 증거하셨고, 다른 여러 신약성경도 성령님을 ‘예수님의 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롬8:9, 갈4:6, 벧전1:11) 따라서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영으로써 예수님께서 행하신 죽음과 부활 등 구원 사역의 영적 효력을 담고 계십니다. 3. 성령님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십니다.(요14:17)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영이시므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예수님과 우리가 영적으로 연합하게 됩니다. 이 연합을 통해 예수님께서 이루신 죽음과 부활에 우리가 참여하게 되고(골2:12)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죽음을 이기는 구원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루신 객관적 구원과 우리의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주관적 구원이 ‘연합’을 통해 연결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이루신 영적인 신비인 ‘연합’이 우리를 구원했음을 기억하며 더욱 큰 감사와 기쁨으로 구원을 누리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2개월 전by 김대선
  • 6월 14일 설교 요약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사십시오 (요 11:39-44)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는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1.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한 표적입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일곱 개의 표적은 모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생명을 얻게 하려는 목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요21:30)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표적을 행하시는 목적이 예수님을 믿게 하려 함임을 언급하셨습니다.(요11:15, 42) 우리는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표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완전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지만 이틀을 더 유하신 후 나사로가 있는 곳으로 가셨습니다.(요11:6)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어도 3일간 영혼이 몸 주변에 머무른다고 여겼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유대인들의 인식을 고려하여, 나사로가 완전히 죽었다고 여겨지는 시점인 나흘 된 날에 표적을 행하시기 위해 이틀을 더 유하신 것이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시신은 부패하고 냄새가 났지만(요11:39)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너라’라고 말씀하시자 나사로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완전한 죽음’을 이기시는 그리스도임을 보여줍니다. 3. 우리는 부활을 바라보며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한 나사로는 이후 다시 죽었습니다. 나사로의 부활은 진정한 부활이 아닌 마지막 날에 일어날 부활과 영생의 예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마지막 날에 일어날 부활울 기점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부활과 영생을 바라보며 소망의 기쁨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개월 전by 김대선
  • 6월 7일 설교 요약

    침과 진흙 그리고 실로암 (요 9:1-7)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신 후 ‘실로암’이라는 연못에서 씻게 하심으로 맹인을 고쳐주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여러 방법으로 치유를 행하셨을까요? 1. 예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창조를 행하셨습니다.(창2:7)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으신 것은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 진흙을 이기신 것은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것’과 연결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주’이심을 나타내기 위해 이러한 방법으로 치유를 행하신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대속주이심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침을 뱉으신 것은 ‘성육신’을 상징합니다. 창조 때 하나님께서 불어 넣으신 생기는 영혼이므로, 생기를 상징하는 침은 예수님의 영혼을, 침이 땅에 떨어지고 흙과 합쳐져 진흙이 된 것은 성육신을 상징합니다. 또한 성육신을 상징하는 진흙이 실로암에서 씻겨진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물은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시18:4, 69:1-2, 창6:17) 따라서 실로암에서 진흙을 씻고 맹인이 보게 된 것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대속’을 상징합니다. 3. 보냄을 받았을 때 순종해야 합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요9:7) 예수님께서는 맹인을 보게 하시기 전에, 아직 맹인일 때 그를 실로암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사역은 능력이 갖추어졌을 때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순종으로 감당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부족하나 예수님의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음을 기억하며 보내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개월 전by 김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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