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설교 요약
칭의, 양자(갈 3:24-26) 소명과 중생을 통해 믿고 회개한 자는 하나님께 칭의와 양자의 은혜를 받습니다. 1. 칭의 칭의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여겨주시는 은혜입니다. 여기서 의인으로 여겨주신다는 것은 우리가 진짜로 죄 없는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인으로 여겨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의 ‘대속물’로 삼으셔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를 죄로 인한 모든 형벌과 책임으로부터 해방하셨습니다.(마20:28)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의인’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칭의를 받음으로 여러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최후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마13:43), 정죄 당하지 않으며(롬8:33),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격을 얻습니다.(히9:14) 2. 양자 양자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여기실 뿐 아니라 자녀까지 삼아주시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인데, 우리는 양자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빌1:4-5)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가 됨으로 인해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녀의 삶을 살게 되었으며(롬8:15),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성령님을 따라 사는 능력을 공급받게 되었고(눅11:13), 때때로 우리가 엇나갈 때마다 필요한 징계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12:7) 우리는 이러한 완전한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3일 전by 김대선7월 12일 설교 요약
믿음, 회개(막 1:15) 성령님을 통해 ‘소명’, ‘중생’이 이루어진 자는 그 반응으로 ‘믿음’, ‘회개’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1. 믿음 믿음이란 올바른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믿는 행위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죽음에서 부활하신 우리의 구원자로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롬10:9) 믿음에는 반드시 ‘지식’, ‘동의’, ‘신뢰’라는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식’이란 예수님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며, ‘동의’란 습득한 지식을 진리로 인정하는 것이며, ‘신뢰’란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 ‘동의’, ‘신뢰’의 믿음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회개 회개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죄를 후회하며 죄에서 돌이키는 모습을 의미합니다.(욥42:6, 행3:19) 즉 ‘죄를 향하던 삶의 방향’을 ‘하나님을 향하는 삶의 방향’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회개는 ‘단회적 회개’와 ‘반복적 회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단회적 회개’란 ‘구원받는 회개’로 위에서 살펴본 ‘삶의 방향을 죄에서 하나님으로 돌이키는 회개’입니다. 이러한 회개는 완료된 회개이며, 다시 반복하지 않습니다. ‘반복적 회개’는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하는 회개로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기 위한 회개입니다.(벧전2:11) 이러한 ‘반복적 회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구원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3일 전by 김대선7월 5일 설교 요약
맥추절의 진정한 의미(행 2:1-4) 맥추감사주일은 성경의 맥추절에서 유래한 한국교회의 절기로 ‘맥추절의 의미’를 기억하며 기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맥추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 우리를 먹이시고 지키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밀을 추수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 날입니다.(출34:22) 한국교회는 이러한 맥추절의 정신을 계승하여 보리추수가 마무리되는 7월 첫째 주를 ‘맥추감사주일’로 정해 지켜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직접 곡식을 추수하지 않지만 한 해의 반이 마무리되는 우리를 먹이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맥추감사주일을 기념해야 합니다. 2.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받은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맥추절을 ‘나탄 토라’(מַתַּן תּוֹרָה)라고 부릅니다. ‘나탄’은 ‘주다’, ‘토라’는 ‘율법’이라는 뜻으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은 날이 바로 맥추절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는 곡식을 추수함으로 감사를 드리는 절기인 맥추절에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보살핌만을 받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자들임을 의미합니다.(출19:5) 그러므로 우리는 맥추감사주일을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다짐하며 기념해야 합니다. 3.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입니다. 맥추절의 또 다른 이름은 ‘오순절’로 이날은 신약시대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입니다.(행2:1,4) 이날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복음을 전했고, 베드로의 설교로 삼천 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행2:41) 그리고 이러한 장면은 과거 모세가 율법 돌판을 가지고 내려올 때 금송아지를 섬긴 이스라엘 백성 삼천 명이 죽임을 당한 사건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는 율법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맥추감사주일을 기념해야 합니다.2주 전by 김대선6월 28일 설교 요약
소명, 중생(요 3:3-7) 소명, 중생은 구원 서정 중 첫 번째, 두 번째 서정입니다. 1. 소명 소명이란 하나님께서 죄인을 부르시는 과정입니다. 소명은 구원 서정의 가장 앞에 위치함으로써 구원이 인간의 행위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됨을 보여줍니다. 소명의 종류에는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이 있습니다. 외적 소명은 성경이나 전도를 통해 복음을 듣는 소명으로, 죄인은 전적으로 무능하여 외적 소명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내적 소명은 성령님께서 죄인을 영적으로 부르시는 소명으로, 구원은 내적 소명으로만 이루어집니다.(고전2:4, 살전1:5) 또한 중요한 점은 내적 소명은 반드시 외적 소명을 수단으로 삼아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적 소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최선을 다해 외적 소명인 전도의 사명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중생 중생이란 ‘거듭나다’라는 의미이며 우리의 몸이 아닌 영이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듭나야 함을 말씀하시며(요3:3), 성령님을 통해 중생이 이루어짐을 가르치셨습니다.(요3:5) 그런데 중생한다고 해서 우리가 바로 죄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영은 거듭난 새 영이 되었지만 아직 육체의 정욕이 남아 죄를 짓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우리의 영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법을 섬기게 하는 마음을 주어 우리의 삶의 방향을 죄에서 멀어지게 합니다.(롬6:2) 그러므로 우리는 중생을 통해 완전히 죄인된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음을 기억하며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롬7:25)2주 전by 김대선6월 21일 설교 요약
연합 (요 14:16-17) 구원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우리는 구원에 대해 정확히 알고 구원의 기쁨을 풍성하게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구원에는 객관적 구원과 주관적 구원이 있습니다. 구원은 객관적 구원과 주관적 구원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 구원이란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로 이루신 구원이고 주관적 구원이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구원입니다. 이 두 구원은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 서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2.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 중 ‘영으로 계신 하나님’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이신 분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께서는(요14:6)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표현하심으로(요14:17, 15:26)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영임을 증거하셨고, 다른 여러 신약성경도 성령님을 ‘예수님의 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롬8:9, 갈4:6, 벧전1:11) 따라서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영으로써 예수님께서 행하신 죽음과 부활 등 구원 사역의 영적 효력을 담고 계십니다. 3. 성령님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십니다.(요14:17)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영이시므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예수님과 우리가 영적으로 연합하게 됩니다. 이 연합을 통해 예수님께서 이루신 죽음과 부활에 우리가 참여하게 되고(골2:12)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죽음을 이기는 구원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루신 객관적 구원과 우리의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주관적 구원이 ‘연합’을 통해 연결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이루신 영적인 신비인 ‘연합’이 우리를 구원했음을 기억하며 더욱 큰 감사와 기쁨으로 구원을 누리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3주 전by 김대선6월 14일 설교 요약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사십시오 (요 11:39-44)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는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1.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한 표적입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일곱 개의 표적은 모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생명을 얻게 하려는 목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요21:30)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표적을 행하시는 목적이 예수님을 믿게 하려 함임을 언급하셨습니다.(요11:15, 42) 우리는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표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완전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지만 이틀을 더 유하신 후 나사로가 있는 곳으로 가셨습니다.(요11:6)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어도 3일간 영혼이 몸 주변에 머무른다고 여겼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유대인들의 인식을 고려하여, 나사로가 완전히 죽었다고 여겨지는 시점인 나흘 된 날에 표적을 행하시기 위해 이틀을 더 유하신 것이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시신은 부패하고 냄새가 났지만(요11:39)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너라’라고 말씀하시자 나사로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완전한 죽음’을 이기시는 그리스도임을 보여줍니다. 3. 우리는 부활을 바라보며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한 나사로는 이후 다시 죽었습니다. 나사로의 부활은 진정한 부활이 아닌 마지막 날에 일어날 부활과 영생의 예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마지막 날에 일어날 부활울 기점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부활과 영생을 바라보며 소망의 기쁨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1개월 전by 김대선6월 7일 설교 요약
침과 진흙 그리고 실로암 (요 9:1-7)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신 후 ‘실로암’이라는 연못에서 씻게 하심으로 맹인을 고쳐주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여러 방법으로 치유를 행하셨을까요? 1. 예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창조를 행하셨습니다.(창2:7)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으신 것은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 진흙을 이기신 것은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것’과 연결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주’이심을 나타내기 위해 이러한 방법으로 치유를 행하신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대속주이심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침을 뱉으신 것은 ‘성육신’을 상징합니다. 창조 때 하나님께서 불어 넣으신 생기는 영혼이므로, 생기를 상징하는 침은 예수님의 영혼을, 침이 땅에 떨어지고 흙과 합쳐져 진흙이 된 것은 성육신을 상징합니다. 또한 성육신을 상징하는 진흙이 실로암에서 씻겨진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물은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시18:4, 69:1-2, 창6:17) 따라서 실로암에서 진흙을 씻고 맹인이 보게 된 것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대속’을 상징합니다. 3. 보냄을 받았을 때 순종해야 합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요9:7) 예수님께서는 맹인을 보게 하시기 전에, 아직 맹인일 때 그를 실로암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사역은 능력이 갖추어졌을 때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순종으로 감당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부족하나 예수님의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음을 기억하며 보내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1개월 전by 김대선5월 31일 설교 요약
바다 위를 걸으신 예수님 (요 6:16-21)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바다 위를 걸으신 기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적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1.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바다는 ‘죄의 권세’를 상징합니다.(사27:1, 미7:19) 그리고 죄의 권세를 굴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바다를 밟으시는 분’으로 고백합니다.(욥9:8, 합3:15)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으셨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가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기 위한 표적으로 바다 위를 걷는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2.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배를 탔습니다.(마14:22) 따라서 그들의 항해가 단순한 항해가 아닌 예수님께 순종하는 ‘사명’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능력으로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 갈릴리 출신이었고, 제자 중 어부도 다수였지만 바람과 파도를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바람이 그치고 배는 목적지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명을 감당하는 힘은 우리의 능력이 아닌 예수님의 은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3. 그럼에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비록 사명은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사명을 위해 우리의 모든 힘과 정성을 쏟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바람과 싸웠기에 바다 위를 걸어 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실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먼저 사명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1개월 전by 김대선5월 24일 설교 요약
무엇을 바라보는 믿음인가? (요 6:1-15)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행하신 기적 중 사복음서 전체에 기록된 유일한 기적으로 복음의 의미를 잘 담고 있는 중요한 기적입니다. 1. 오병이어는 ‘만나’의 재현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은 광야에서(마14:13, 막6:35, 눅9:12) 일어난 기적이며,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시기 전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마14:19, 막6:41, 눅9:16)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었던 ‘하늘의 양식’인 ‘만나’를 떠오르게 합니다. 즉 오병이어 기적은 ‘만나’의 재현입니다. 2. 떡이 아닌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신 이유는 사람이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신8:3) 그러므로 오병이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신 목적은 떡을 먹고 배부르라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행하는 분이신 예수님을 보고 믿으라는 것입니다.(요6:26) 즉 오병이어 기적을 체험한 자들은 기적의 결과인 ‘떡’이 아닌 기적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3.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자만이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요6:28)고 말씀하시며 오병이어의 참 뜻을 가르치셨지만 떡을 보고 예수님을 따른 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6:68-69)라고 고백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제자들과 같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1개월 전by 김대선5월 17일 설교 요약
베데스다와 38년 된 병자 (요 5:1-9) 오늘 본문은 ‘베데스다’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표적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공급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은혜가 필요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베데스다에 모인 병자들은 은혜를 누리지 못한 채 절망과 낙심 가운데 누워 있었습니다.(요5:3) ‘은혜의 집’ 베데스다가 ‘은혜가 필요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데스다의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38년’이라는 기간은 ‘긴 기간’으로 ‘베데스다’의 병자들 중 가장 은혜가 필요한 병자임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은혜가 필요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심으로 자신이 진정한 ‘은혜를 베푸는 자’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조건 없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베데스다의 은혜는 ‘물이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은혜를 주지는 않으면서, 헛된 경쟁으로 은혜가 필요한 자를 더욱 좌절하고 낙심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조건 없이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공로나 행위를 요구하지 않는 진정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3.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율법에 의하면 병자는 성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레2:18) 그러므로 베데스다의 병자들은 성전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바라만 볼 뿐,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은혜를 통해 병 고침을 받음으로 성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요5:14)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구원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참 은혜의 공급처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2개월 전by 김대선5월 10일 설교 요약
표적이 아닌 말씀으로 (요 4:43-54) 오늘 본문은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을 통해 ‘표적’이 아닌 ‘말씀’으로 세워진 믿음이 진짜 믿음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표적을 보고 믿는 믿음은 ‘가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인들을 향해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갈릴리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입니다.(요4:45) 갈릴리인들을 향한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는 예수님의 책망은 표적을 보고 믿는 믿음이 ‘가짜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2. 말씀을 듣고 믿는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가며 아들의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는 말씀을 듣고 믿는 믿음이 ‘진짜 믿음’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는 말씀을 통해 믿음은 오직 말씀을 들음으로 주어짐을 확실히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적을 보고 믿는 믿음이 아닌 말슴을 듣고 믿는 믿음이 ‘진짜 믿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우리는 오히려 표적을 경계해야 합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막13:22)는 말씀처럼 표적은 오히려 우리를 미혹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건전한 믿음은 표적을 바라거나 쫓아다니는 믿음이 아닙니다. 죄인인 나를 구원하심을 가장 큰 기적으로 여기고 은혜를 누리는 삶이 참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표적을 보고 믿는 믿음이 아닌 말씀을 듣고 믿는 믿음으로 복된 삶을 사는 성도가 됩시다.2개월 전by 김대선5월 3일 설교 요약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 (요 2:1-11)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기쁨’을 주는 분이십니다. 성경에서 포도주는 ‘기쁨’을 상징합니다.(삿9:13, 시104:15, 전10:19)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 포도주를 만드셨으며, 연회장은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한 채 좋은 포도주라며 극찬합니다.(요2:9-10) 예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알지 못하며, 세상의 것과 비길 수 없는 ‘참 기쁨’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우리의 ‘진정한 거룩함’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정결 예식을 위한 돌항아리’를 이용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정결 예식을 위한 돌항아리가 비어있었다는 것은 예수님 없는 정결 의식은 형식적인 껍데기에 불과함을 의미합니다. 율법을 완전케 하시는(마5:17) 예수님께서는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시고, 그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진정한 거룩함’을 이루시는 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이루는 분이십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다’고 요청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포도주를 제공하여 구원자임을 나타내라’는 마리아의 의도를 거절하신 말씀입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서는 그제서야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2:23-24) 자신의 구원자임을 드러냄으로 영광을 받을 때는 오직 ‘십자가 죽음’의 때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기적의 산물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을 통해 참 기쁨과 거룩함,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2개월 전by 김대선